인류세의 한의학 <完> - 김태우 한의예과 교수
김태우 한의대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소장,『몸이 기후다』 저자
인류세
인류는, 사람 인(人)과 무리 류(類)를 사용하여 인간이라고 묶을 수 있는 무리를 지칭한다. 인류에는 생물학적인 종(種)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휴먼 스피시스(human species)의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라는 것은 다른 무리와 섞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생식을 통해 재생산이 가능하느냐 아니냐가 종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일 정도로 다른 종과의 경계가 분명한 개념이다.
최근에는 종과 종 사이를 너무 분절적으로 보는 관점에 비판적인 논의들이 적지 않다. 『종과 종이 만날 때』 같은 저서1)는 그러한 떨어뜨려서 보려고 하는 관점에 대한 반대를 담고 있다. 종간 분리의 관점은 종차별과 같은 문제의 근간이 된다.
인류가 특별한 종으로 간주된 것은 그 부류가 생물학적인 종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명명되는 종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을 때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인 내용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종이 되었다. 문화라는 개념이 있어야 설명할 수 있는 특별한 종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특별한 종으로 보려는 시선이 깔려있다.
문화는 특히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문화가 있는 인간과 문화가 없는 비인간, 문화는 또한 자연과 쌍으로 있으면서 자연과 분리되는 개념이다. 문화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 지으려는 경향도 이 이분법적인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다른 종과 차이나는 점이 있지만 그 차이를 너무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인류세는 인간의 “문화” 활동이 지구의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지칭하고자 제안되었다. 인류세는 지질학적 시대의 명명이다. 고생대, 신생대, 쥐라기 등 과학 시간에 들어본 지질 시대 명 중 최신 명명이다. 지금을 지칭하는 시대는 홀로세인데, 이 시대명을 인류세로 바꾸자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그만큼 인간의 “문화” 활동이 지구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화” 활동은 배출이다.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의류폐기물, 하수, 폐수 또한 핵폐기물까지 인간의 배출 활동의 결과물 리스트는 길고, 그 양도 어마어마하다. 자동차, 비행기로 이동하고, 건물에 에어컨을 돌리고, 중저가 의류가 넘쳐나는 “문화”의 시대를 향유하며 배출하는 것들이 지구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흔적이 깊어서 역사로 새겨질 정도다. 인류세는 적절한 이름이다.
인류가 새기는, 지구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인류의 “문화” 활동의 영향이 큰 시대가 지금의 시대다. 배출물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과 “문화”는 깊은 연관이 있다. 문화가 인류를 다른 종들과 차별화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고, 그 간극의 골을 스스로 심화시키면서 인간들은 문화 밖을, 인류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잃고 있었다. 인류 종 중심의 생각으로 지구에 기거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기후위기
무엇보다도 바뀌고 있는 지구의 역사는 기후에서 드러난다.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한 인간의 문화는, 산업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이 구분은 또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시점의 기준이 된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지구의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 아래로 묶어 두자는 것이 파리협약의 내용이었다.
그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여러 활동도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온실가스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래프를 보면 코로나 시기에 잠깐 역행을 했을 뿐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가 산업화 이후에 꺽인 적이 없다. 그에 따라 온도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이미 1.5도 상승을 넘어섰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그 주장에 수긍이 가는 여름들을 우리는 최근에 맞닥뜨리고 있다.
온도 상승으로 기후의 순조로움이 깨어지면서 여러 흔적을 인간의 문화 활동은 지구에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가시적으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해수면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을 비롯해 바닷가에 모여 살던 생물종들이, 이동을 하던지 침수되던지 해야할 상황이 되고 있다. 섬들에 물이 차오른다면 지구의 모습이 바뀌는 분명한 흔적이 될 것이다. 단지 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 동아시아의 바닷가 도시들도 위협을 받고 있다2).
무서운 산불도 전에 없이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경북 산불을 통해서 경험했듯이 한국에서도 전에 없던 산불이 번지고 있다. 봄에 강한 바람을 타고 산불이 나는 지역은 지금까지는 강원도 영동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 산불의 지역적 분포가 확대되고 있다. 남하하고(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서진하여(영동에서 영서까지) 경북 대부분의 지역이 강력한 산불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것은 경북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고,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한반도 어느 지역이던지 산불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산지가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산불에 대한 주의와 대책은 더욱더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가뭄과 폭우도 전과 같지 않다. “극한”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게 될 정도로, 건조함과 강우의 특별한 현상이 일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극한 기후가 남기는 흔적들이 또한 지구에 자국을 남기고 있다.
기후위기를 통한 변화에서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것 중의 하나는 종(種)들의 이동이다. 기후변화로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것은 종들의 본격적인 이동의 전조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의 추이가 계속된다면, 인간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늘어나면서 이동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살만한 땅에 대한 각축과 자원의 부족으로 문제는 심화될 것이다. 단지 기온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종과 다른 종들이 사는 데 필수적인 먹거리, 물 등이 보장되지 않을 때 거대한 이동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한의학
<인류세의 한의학>은 인류세라는 시대에 한의학의 관점으로 지금의 시대와 기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설정된 제목이다. 또한, 인류세의 기후위기 시대에 한의학이 직면한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의학에도 적용된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용어는 한의학에도 사용 가능하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과 같은 악조건의 경제 상황이 기후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지시하는 기후플레이션은, 한의학의 약재 수급 문제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기존 식물들의 서식 위도가 바뀌고 있다(이것도 종들의 이동이다).
한국에서 인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강원도로 바뀐 것은 인삼 산지가 변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상황을 드러낸다. 인삼뿐만 아니라, 다양한 본초들이 기후에 영향을 받고 또한 재배를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올라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약을 공장에서 화학물질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닌 한의학의 본초들은 기후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인류세에서 한의학의 상황에 대한 고찰과 함께, 한의학이 기후위기 시대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먼저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 문제에 대해 한의학은 할 말이 있다. 육기의 문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의학에서 기후변화에 수반되는 육기의 변화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분절적 관점에서 배태되었다. 인간과 자연을 나누는 관점이, “문화”를 너무 독보적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지금의 문제로 드러났다. 관점의 힘은 세다. 관점이 언어를 만들고 실재를 구성한다.
분절적 관점이 없다면 기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연과 지구에 대해 접근할 수 있을까? 이런 논의들을 위해서는 분절적 관점과 인간중심주의를 떠난 어떤 예시가 있다면 더 잘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한 예시를 좀처럼 찾기 어려운 지금 문화/문명의 상황에서, 한의학과 같은 동아시아 의학은 드문 예시를 제공한다. 동아시아의학에 내재한 사유와 실천의 논리는 기후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류세의 한의학>은 그러한 논의를 해보려고 했었다. <인류세의 한의학>을 통해서 한의학이 과거에 있던 생각과 실천만을 가져와서 현재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차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기후위기에도 한의학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인류세의 한의학>은 이번이 41번째의 글이다. 2021년 9월에 시작해서 그동안 인류세, 기후위기, 한의학과 관련해서, 그 연결 지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다. 그동안의 글들에서 전개된 생각들이 독자들과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사원문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