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고령자 다약제 문제, 처방 하나로 여러 증상 치료하는 ‘한약’ 활용하자” - 권승원 한의학과 교수
[편집자 주] 초고령화시대를 맞이해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인의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지는 한의학이 노인의학 분야에 가진 가능성을 확인하고, 노인에게 발생하기 쉬운 다약제, 인지저하 및 우울, 근감소증 문제에 어떠한 답을 줄 수 있을지 알아봤다.
<연재순서>
1. 초고령화시대, 노인의학의 가능성으로 떠오른 한의학
2. 노인의 다약제 문제와 한의학
3. 노인의 인지저하 및 우울증과 한의학
4. 노인의 근감소증과 한의학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우리나라 노인의 과반수 이상이 5개 이상의 약을 처방받는 다약제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이에 최소한의 약으로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처방으로 고령자의 여러 증상을 통합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한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평균 2.2개의 만성질환을 진단받았으며, 63.9%의 노인이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하기 쉬운 문제가 바로 다약제 복용이다. 다약제 복용은 일반적으로 다섯 개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많이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약제가 처방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약제 복용은 약물 간 상호작용, 부작용, 약물과 다른 질병 간 상호작용 등을 만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과반수 이상이 다약제 복용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75세 이상 환자 중 5개 이상의 약을 만성적으로 처방받은 비율은 전체의 65.4%였다.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의 HIRA-NPS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65세 이상 31만여 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1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중증 다약제’ 비율이 44.9%, 21종 이상의 과도한 다약제 복용은 3.0%로 보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보았을 때도 다약제 복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OECD Health Static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75세 이상 노인이 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50.1%였으며, 우리나라는 64.2%로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승원 경희대 한방내과 교수는 이러한 다약제 복용이 임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며, 실제 70대 남성 환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변비에 대한 약을 5종류 이상 복용하고 있으며, 5년 전부터는 야간뇨와 빈뇨 증상으로 솔리페나신(항콜린제)을 처방받아 복용해왔다”며 “그러나 한방병원에 내원한 이유는 기억력 저하와 집중력 저하였고, 문진 과정에서 솔리페나신을 복용한 시점부터 변비가 동반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변비, 기억력 저하, 집중력 저하는 모두 항콜린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기억력 향상이나 집중력 개선을 위해 또 다른 약물이 추가된다면 이는 처방 연쇄(prescription cascade)에 해당하게 되며, 불필요한 약 복용이 환자의 예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이러한 부작용이 바쁜 임상 환경 속에서 충분히 경과 관찰되지 못한 채 처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약제 부작용에 취약한 고령사회에서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환자 본인도 현재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제 탓에 새로운 증상이 생길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새로운 약제를 찾아가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중 타겟, 다중성분에 하나의 효과 단위, 통합적 접근이라는 특징을 가진 한약의 강점이 드러난다. 고령자의 다약제 복용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복합질환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약제로 증상을 중재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권 교수는 “한약은 다양한 증상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다. 팔미지황환을 예로 들어 보면 같은 처방은 근골격계 통증, 수면장애, 소화기 증상, 배뇨 문제 등 서로 다른 증상을 아우르며 복합질환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전략을 제공한다”며 “또한 한약은 다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개별 성분의 단순 합이 아니라 전체 처방이 하나의 효과 단위(effect unit)로 작용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단일 성분 약물이 증상별로 나뉘어 처방되는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여, 복잡한 병태를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복합질환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약제 사용이 늘어나는 고령 사회에서, 한약은 다양한 증상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약물 부담을 줄이며, 통합적 치료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해법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고령환자의 비중이 적지 않은 한의 임상가에서도 한약을 처방할 때 다약제 문제를 고려해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노인을 위한 의학은 있다’를 집필한 김성혁 한의사는 “임상에서는 노인 인지저하 초기나 노쇠 증상들이 경미하거나 다른 질환과 중첩되어 오인되기 쉽다”며 “예를 들어 어지러움, 피로, 우울 등 증상은 내과적 질환이나 다약제 부작용, 노화 관련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원인과 관련되므로 철저한 변증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승원 교수는 “현재 복용 중인 양약과 이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이환질환을 반드시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증상만 보고 처방하기보다는, 어떤 질환으로 어떤 약을 복용 중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눈앞의 증상 해결에만 국한하지 않고, 기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찰하여 사용해야 하며, 처방의 수를 최대한 1~2개로 제한하여 다약제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는 본래 한의학의 기본 처방 구성 원리를 지킨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기사원문
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