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경질환에서 한약과 양약 병용은 안전할까? - 권승원 한의학과 교수
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부교수
주요 신경질환에서 양약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
확실히 중증 신경질환에서는 각 질환별 양약치료가 필수적이다. 허혈성 뇌졸중 환자에게는 재발 예방을 위해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와 같은 항혈전제가 투약되며, 파킨슨병에서는 레보도파, 도파민 작용제, MAO-B 억제제 등 도파민 보충 약물이 운동증상을 완화하는 표준 치료로 활용되고 있다. 치매 환자에게는 콜린에스터레이스 억제제가 인지 기능과 일상 기능을 개선하는 근거 기반 1차 치료로 강력히 권고된다. 벨마비(안면신경 마비)의 경우, 높은 수준의 근거를 토대로 발병 초기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투여가 신경 염증을 줄여 회복을 돕는 표준 요법으로 확립되어 있다. 여기서 언급한 이 양약은 모두 다수의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입증되어, 신경질환 환자의 장애 예방과 기능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훌륭한 근거 기반 치료에도 존재하는 한계와 한약의 보완적 역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준치료만으로 각 신경질환의 모든 임상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뇌졸중의 경우, 재활치료와 예방약물만으로는 신경학적 회복에 한계가 있어, 환자들은 추가적인 회복 촉진책을 모색하고는 한다. 파킨슨병도 마찬가지다. 레보도파 등의 약물치료는 떨림·경직 등 운동증상에는 필수적이지만 인지저하, 우울, 불면, 자율신경 이상과 같은 비운동증상에는 효과가 부족하다. 더욱이 항파킨슨병 약물은 병의 진행을 멈추지 못하며 장기 복용 시 효과 감소나 부작용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치매도 마찬가지이다. 콜린에스터레이스 억제제는 기억력 등 핵심증상에 작용할 뿐, 간호하는 가족을 괴롭히는 이상행동 등의 주변증상에는 특별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발병 초기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착실히 적용했음에도 안면마비 후유증이 남은 환자도 같은 예이다. 이처럼 훌륭한 양약 치료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잔존 증상과 한계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한약을 포함한 한의치료에 눈을 돌리게 된다. 실제 국내에서는 뇌졸중, 파킨슨병, 치매, 안면마비 환자의 상당수가 침구나 한약 치료를 병행하여 증상 완화와 삶의 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한약치료 병행에 대한 주요 우려사항
한편, 신경질환 환자들이 한약과 양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우려가 두 가지 있다.
첫째, 간·신장 안전성 문제이다. 한약치료에 부정적인 의사들이 너무도 자주 활용되는 클리셰인데, 한약이 간이나 신장에 독성을 주어 기존 약물과 함께 쓸 때 간손상이나 신장기능 악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특히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할 경우, 약물 상호작용으로 간독성, 신독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의사가 많다. 이 때문에 한약치료를 주저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둘째, 약효 상쇄 또는 과증폭, 곧 상호작용 우려이다. 한약 성분이 양약의 효과를 방해하거나 감소시켜 치료 효과를 떨어뜨릴지 모른다는 걱정, 혹은 반대로 특정 한약이 양약의 효과를 지나치게 증폭하여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예를 들어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 환자가 한약을 함께 먹으면 출혈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식의 막연한 불안감이 대표적이다. 파킨슨병 환자에 대해서도 한약 탓에 예민한 항파킨슨병 약물의 농도가 안정화되지 못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일부 의사들과 환자들은 한약과 양약의 병용을 망설이곤 한다. 망설임을 넘어 어떤 의사들은 한약은 절대 안된다는 식의 지도를 하기도 한다.
임상 근거로 본 한·양약 병행의 안전성과 상승효과
최신 임상연구들은 이러한 우려와 달리 한약과 양약을 병행해도 안전하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간·신장 안전성부터 살펴보자. 2022년 국내 한방병원에서 뇌졸중 환자 111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양약(평균 6종)과 한약을 동시에 복용한 환자들 중 약물로 인한 간손상이나 신장손상 사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초기부터 간 수치가 높았던 1명의 환자는 한약 복용 후 간기능이 호전되었고, 일시적으로 간 수치 이상을 보인 2명도 원인이 한약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신장 기능 악화 사례도 전무하여, 다약제 복용 뇌졸중 환자에게 한약을 병행해도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간·신장 독성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파킨슨병 환자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있다. 파킨슨병 환자 268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도 단 1명(0.6%)의 약인성 간손상 사례가 확인되었을 뿐이며, 신장 기능 악화 사례는 전무했다. 종합하면, 전문 한의사의 지도 하에 한약을 병행하는 것은 간·신장 안전성 측면에서 대체로 안전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다음으로 약효 간섭 우려에 대해 살펴보자. 다양한 신경질환의 임상시험과 메타분석 자료들은 한약 병행이 표준치료의 효과를 떨어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킨슨병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는 한약치료 병용 시, 대표적인 항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의 사용용량이 경감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하여, 한약치료 병용 시 기존 양약치료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음이 시사되었다. 대만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도,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 환자에서의 출혈 부작용 발생률이 한약치료 병용 시 유의하게 낮다는 결과를 보였다. 이 역시 기존치료의 효과를 오히려 높여주며, 안전한 투약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종합하면, 신경질환에 있어 한약과 양약 병용에 관한 안전성 우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기우임이 명확하다. 한의사가 직접 진찰하고 처방하는 임상 환경에서는 한약이 간이나 신장에 치명적 부작용을 주지 않을 뿐 더러, 표준치료의 효과를 저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한약치료는 잔존 증상의 해결을 보완하고 치료 효과를 높여주는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다.
기사원문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