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학장-한의신문 2015.7.24]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69)
관리자
15-07-27 13:43
1,464
日本人 丹波元堅 醫方類聚論
“집대성이라고 칭할 만한 것으로 조선의 ‘醫方類聚’만한 것이 없다”

    日本人 丹波元堅은 의학자이다. 저서로 『藥治通義』, 『傷寒廣要』, 『金匱要略述義』 등이 있다. 그는 1852년에 『의방유취』를 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서문을 적었다.
    “醫學의 道는 넓다. 무릇 학문이 지금과 옛 것을 오랜 동안 꿰뚫고 뭇말들을 융회관통함으로부터 하지 못한다면 만가지 변화에 응하지 못하고 하늘에 돌려주는 공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 하물며 책에 글을 써서 후진들에게 이어주는 것은 그럴만한 사람을 얻기 힘든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일찍이 내가 망라하여 모아서 집대성이라고 칭할 만한 것을 구해보건대 조선국에서 모은 『醫方類聚』만한 것이 없었다. 그 책이 어느 시대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상세하지는 않지만 인용해준 것은 이에 명나라 영낙제 시기(1403∼1424)에 멈추고 있다.

    그 나라의 허준의 『동의보감』을 일본국의 祖宗朝에서 文官과 醫官들에 명하여 撰集토록 하였다. 金安國의 『慕齋集』과 梁文襄公의 碑銘에서 서술하기를 『醫方類聚』교정하여 올렸다고 하였다. 梁誠之는 正統六年(1441년)에 進士가 되어 여섯 임금 밑에서 벼슬을 하여 成化十八年(1482년)에 죽었다. 그러한 즉 당시 편찬한 시기를 대략적으로 가히 알 수 있다. 책이 무릇 266권으로 권책이 두터운 책으로 되어 있다. 그 채집한 것들이 무릇 150여부인데 송나라와 원나라시대 것으로서 없어진 책들도 또한 드물지 아니하다.

    무릇 篇帙이 풍부하여 현존하는 醫籍의 으뜸이라. 學者라면 마치 山을 주조하여 銅을 만들고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든 것 같을 것이니, 진실로 方術의 大觀이오 濟生의 寶筏이라.

    이 책이 세상에 겨우 一部만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文祿之役(임진왜란을 말함)에 장군인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얻은 바이다. 이후 200년 후에 아버님께서 어떤 醫家 什襲藏弆之에게서 얻었고 또 매양 그 정수를 발췌하여 임상에서 처방하는 쓰임에 제공하였는데 때때로 빌려서 베낀 것도 있었지만 또한 매번 篇帙이 커서 왕왕 결실을 맺지는 못하였다고 하셨다. 同僚인 喜多邨士栗이 이미 그 학문에 博通하였는데, 이 책이 가장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끊기어 전해진 판본이 드문 것을 한으로 여겨서 마침내 정미로운 기술자들을 모아서 聚珍版을 만들고자 하였다.

    同志들이 이 말을 듣고 손뼉치며 뛰면서 기뻐하며 각자 金을 각출하여 재물로 돕고자 하였다. 士栗이 이에 더욱 힘써서 장차 이어서 마침을 고하니 가히 정성스럽다고 할 만하다. 원본에서 빠진 12권은 士栗이 前醫員인 澀江道純에게 諸家들의 것을 참고하여 간략하게 보충하게 채울 것을 청하였으니, 그 공적이 가히 인몰될 수 없을 것이다.

    무릇 우리 大府가 두터히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휼하여 의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어 약제를 베풀어 외롭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여 庠舍를 베풀고 醫生을 가르쳐서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고 재앙을 치료함을 갖춤을 다 예비하지 않음이 없었다. 士栗이 들어가 侍直兼敎諭醫庠을 하여 지금에 이와 같은 훌륭한 일을 하여 학자들로 하여금 능히 만가지 변화에 응할 수 있게 하고 하늘에 돌리는 공을 모았으니 그 국가의 생명을 좋아하는 덕을 우러러서 백성들의 요절는 자들을 구제하는 일이 여기에 있는 것인져. 大日本 嘉永五年(1852년) 四月朔 江戶侍醫尙藥兼醫學敎諭 丹波元堅이 撰하다.”(필자의 번역)

    위의 서문에서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제가의 학설들을 모은 책으로 『의방유취』가 으뜸임을 말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을 얻게 된 과정을 소상히 적고 있다. 셋째, 일본에서 이 책을 간행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