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14) - 21세기 예비 한의사의 준비
관리자
12-09-10 09:42
2,458

들어가며
지난 4월 27일 한의사가 장래희망인 고1 학생이 직업참관프로그램 이수를 위해 필자에게 와서 진료활동을 견학하고 한의사의 직업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부터 한의사 이외에 다른 꿈은 없었다는 학생의 소신을 들으며 선배로서, 교수로서 반갑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짐도 느꼈다.
한의대에는 매년 최상위권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재들을 어떻게 교육하여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올바르게 이끌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래 한의계의 흥망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호에는 21세기 예비한의사로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거나 전공할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고자 한다.

스스로를 분석하고, 조금 멀리 크게 보라
필자는 학생들을 만나면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주 물어보는데, 졸업을 앞둔 본과 4학년생들도 막연한 경우가 많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실습도 있으므로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 대한 SWOT분석(주: 장점 단점 기회 위기 및 이들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나 재능 적성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체로 성적이 우수하면 병원수련을 한번 생각해 보고, 안되면 군복무 내지는 취업 정도를 생각한다.

필자는 다양성을 강조한다. 한의계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 획일적이고 단순한 직업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학교 또는 선배들이 많은 길과 가능성을 제시해 주지 못한 책임도 크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은 인체 내지는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한의학적 원리는 직접적인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락·경혈이론을 응용한 치료도구 및 건강보조기구의 발명, 체질을 이용한 교육학적 적용, 미병치료와 보험사업의 연계, 약선 등 굉장히 많은데, 일부는 선구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분야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개척해 나간다면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한의학 영역의 확장이라는 결실이 있을 것이다.

의료 봉사 활동을 하라
상당수 학생들이 이미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학창생활 중 모든 학생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꼭 봉사활동을 하기를 권장한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봉사정신은 의료인의 기본소양이다. 의료인이 다른 직업보다 좋은 점들 중 하나는 남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점이고, 특히 한의사는 장비나 공간에 따른 진료활동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환경에서 성심껏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순수한 열정이 있는 학창시절에 경험하는 봉사활동은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둘째, 사회를 고치는 大醫를 생각하라. 의료봉사를 가보면 연로하고 불편한 몸이지만 생계를 위해 매일 반복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러한 분들이 과연 몇 차례의 치료만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정성스런 치료에 일부 호전됨은 있겠지만, 근본 원인인 무리한 노동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점점 더 고통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직면할 때 개인 임상의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질병의 근본 원인을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주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바로 사회를 고쳐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역할을 우리는 일찍이 大醫라 불렀다. 훗날 모두가 정치나 정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에 대해 한번이라도 인식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조금이라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겸손함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라. 학생 수준의 봉사는 사실 부족함이 많다. 또한, 의료봉사를 하다보면 임상이라는 것이 교실 안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겸손함을 배울 수 있다. 때로는 부족한 기술과 지식이지만 환자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아픔을 위로해줄 때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경험이다.

여행은 가능한 많이 하라
여행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대로 여행을 많이 하기를 권장한다. 여행을 하면 평소 자신의 환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관을 보게 된다. 미주나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깝게는 아시아권 국가만 가보아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호주 골드코스트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휴양지인 골드코스트에는 3개월씩 쉬는 부모의 휴가를 위해 자녀를 휴양지에 있는 학교로 휴가기간 동안 전학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경우가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자녀의 교육환경을 최우선시하고 부모가 자신을 전적으로 희생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전통적으로 교육을 통한 출세 및 가문의 영광을 중시해온 뿌리 깊은 교육열과 구조적으로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가치관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고의 폭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것이다.

다른 학문과의 접목도 생각해 보라
한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은 임상가를 생각하고, 소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보아 온 기초연구분야를 생각한다. 대학원 과정을 선택할 때에도 대부분 그동안 학부에서 배워 온 과정 중에서만 생각을 하는데, 현재는 전문화가 지나치게 되다보니 오히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의학도 공학 보건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과 교류할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본인이 관심이 있는 다른 분야가 있고 적성에 맞다고 생각된다면,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고생스럽겠지만 다른 관련 분야를 공부하면서 한의학과 접목시켜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타 분야의 교수나 동료들과 맺게 되는 인적 네트워크는 나중에 업무를 위해 인위적으로 맺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원활한 협력과 소통을 할 수 있다.

목표가 뚜렷하다면 유학도 고려해 보라
유학은 비용과 시간의 큰 투자가 따르는 일이므로, 절대로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말 그대로 위험과 투자가치가 높은 High Risk, High Benefit에 속한다. 그러나 한의계는 아직까지 유학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분야에 따라서는 희소가치가 있는 편이다.

다만, 필자가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학의 목표와 동기부여가 진실되고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진정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외국 특정대학에 있고 그 유학이 개인과 학문의 발전에 기여된다고 판단될 때 유학을 고려해야지, 흔히 말하는 단순히 스펙을 쌓기 위해, 과시하기 위해, 취업의 수단으로서만 유학을 생각한다면 진정성도 떨어지고 결과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많다.

세계를 향해 도전하라
신세대들이 일면 당찬 면도 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 안전하고 보수적인 측면이 있음도 본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상당수가 자기주도가 아닌 부모의 설계에 따라 프로그램된 입시 중심의 수동적 교육을 받고, 대학 입학 후에는 갑자기 방임되어 풀어지는 대학생활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교육행태가 낳은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라도 학생들은 자신을 냉철히 분석하고, 조금 앞선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인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지 다각도로 생각해 보기 바라며, 부모나 교육자, 선배들은 예비한의사들이 학창시절부터 다양하고 진지한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쪼록 한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이 모두 비전과 열정을 품고 노력하여,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멋진 후배와 제자들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끝>